순교자들의 무덤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해미 압송로
해미 성지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성지는 한티 고개이다. 이 고개는 당시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압송로로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가르는 가야산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티 고개는
교우들이 무리지어 살던 면천의 황무실 마을과 덕산의 용머리 마을, 배나드리 마을 등지에서 집단으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 군졸들이 압송하여 넘던 고개다. 한티 고개를 넘어 붙잡혀 가던 숱한 순교자들이 고개 마루터에서 고향마을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던 곳에는 주막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가야산(678m)은 덕산면과 해미면의 접경을 이루는 곳이다. 이 산 안쪽에는 유명한 흥선대원군 집안의 무덤들이 있는데,
1866년의 병인박해가 다소 소강 상태에 들어갈 무렵인 1868년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Ernst J. Oppert, 載拔)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파헤친 덕산 굴총 사건으로 오히려 박해가 가중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도로의 왼쪽으로는 수덕사가 자리하고 있는
덕숭산(495m) 자락에 와 닿고 있다. 그러니까 가야산과 덕숭산이 맞닿는 골짜기, 덕산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가
바로 한티 고개인 것이다.
이곳 한티 고개는 1790년부터 1880까지 내포 지방에서 기꺼이 죽음을 택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이 매질과 핍박 속에서도
해미로 끌려가면서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며 넘던 고개이다. 해미 진영에서 관장하던 지역의 천주교 신자들이 대상이었지만
주로 면천, 덕산, 예산 등지에서 살던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어 한티 고개를 끌려 넘어가 해미 진영 서문 밖 사형장에서 처형되었다.
덕산 쪽에서 오르는 길은 덕산 읍내에서 해미 방면으로 가다가 오른쪽에 계곡장 2층 건물이 보이는 입구를 막 지나면 오른쪽 입구에
「한티고개 - 순교자 압송로, 2km」푯말이 보인다. 푯말 옆에는 남원 양씨 효행비가 길가에 보인다. 이곳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승용차2-3대 주차할수 있는 주차장이 보이고 민가의 마당을 관통해서 올라가게 된다.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은 고개
정상에 1처가 시작되어 해미 방면으로 14처가 설치되어 있다.